이내응 사무총장 기고(경기일보 3.25일자)
마법의 함성을 기다리며…
경기도수원월드컵재단 사무총장에 임명된 지 한 달여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나서 텅 빈 경기장에 섰다. 잔디를 차오르며 달리는 선수들도 보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할 관중도 없다. 주인없는 잔디구장, 관중없는 빈의자, 선수들의 숨 소리와 응원의 함성이 사라진 월드컵 경기장은 그야말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2020시즌 프로축구 K리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기약없이 중단되면서 축구가 사라졌다. 무관중을 넘어 축구 자체가 멈춰섰다. 지난 3월 8일 열릴 예정이었던 K리그 수원 삼성-포항 스틸러스전도, 3월 15일 수원 삼성-성남FC 경기 모두 속절 없이 연기됐다. 파릇 파릇한 녹색 그라운드에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공허하게 울린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여파로 오는 6월 12일부터 한 달간 열릴 예정이던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2020 대회도 1년간 연기됐다. 1960년 시작돼 4년마다 치러지는 이 대회는 창설 60주년만에 처음으로 1년 뒤로 미뤄졌다. 남미축구연맹도 2020 코파아메리카를 1년 연기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호이징가는 스타디움을 ‘마법의 원’이라고 지칭했다. 세상과 다름이 인정되고 특별법이 아닌 특별한 법이 지배하는 곳이 마법의 원이다. 내재된 감정들을 복받치듯 분출시킬 수 있고, 바깥에선 할 수 없었던 약간의 일탈도 밉지않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축구팬들은 마법의 원으로 달려가 본능에 충실하며 응원한다.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축구팬 자신도 즐긴다. 선수들의 사기를 복돋아 주고 스스로 신명나게 한바탕 자신의 세계를 즐긴다. 마법의 원 안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우렁찬 함성에 연대감은 강해지고, 동질감은 더해지며 카타르시스도 경험한다. 정신적·감정적 해방을 만끽한다. 마법의 원에 바이러스 빗장이 걸리면서 활화산처럼 분출을 꿈궜던 응원의 감정들도 출구를 찾지 못한다.
경기장이 닫힌 세상은 그만큼 단조로워졌다. 염기훈(수원 삼성)과 이동국(전북 현대)의 K리그 최초 80(득점)-80(도움) 클럽 가입 경쟁이 올해 축구팬들의 관심 중 하나이지만 골 하나 하나, 도움 하나 하나에 긴장할 일도 당분간은 없다. 선수들도 보내는 시간이 힘들다. 단체훈련도 중지되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가격리(?)에 나름대로 보람찬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주의하면서도, 언제 개막의 축포소리가 울릴지 불확실한 상황이기에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축구 없는 일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공허한 마음이다. 구멍난 가슴이 허전하니 몸속 감정 면역력도 약해진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마법의 원’인 그라운드에서 축구팬들의 함성이 다시 울릴때까지….
이내응 경기도수원월드컵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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